• 봄 기운, 감기 기운, 비염으로 한껏 시큰해진 코에서 나는 희망 냄새. 모두 새 것, 새 해에는 새 것.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지나간 한 주였다. 화요일에는 많은 눈이 내렸다. 아마도 겨울의 마지막을 알리는 눈이 될 것 같다. 눈 오는 날은 언제나 좋아. 결국 땅이 질고, 길은 미끄럽기만 해도, 그래도 좋다. 올 겨울도 잘 보냈어, 다시 올 겨울에는 어떤 모습일까. 길게 느껴지지 않는다. 매 해 겨울이 더욱 빨리 오게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풀빵도 먹었고, 호빵도 먹었고, 호떡도 먹었고 고구마도 먹었지. 옥수수 잘하는 집에서 옥수수도 나누어 먹었지. 또 무엇 먹었지, 뭔지는 몰라도 겨울에 먹어야 할 것은 잔뜩 다 먹은 것 같으니 이제 되었다.

    수요일에는 지원서 초안을 마무리하고, 친구들을 초대해 시시콜콜 별 일 없는 이야기를 했다.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즐거웠어. 재미있는 선물, 음식과 좋은 사람들. 아주 자주 모이지는 못하더라도, 할 일이 없고 무엇인가 대단히 따분한 날에는 찾아와 주면 좋을 일이겠다. 언제 또 그럴 일 있겠어. 몇 해만 지나도 모두 삶의 새 막을 맞이할 것이다. 다들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하면 인생은 정말 하염없이 짧기만 한 것. 그러므로 늘 정말로 중요한 일, 알고 지내는 몇 안되는 좋은 사람들. 기회를 만들고, 손가락으로 수를 세는 일. 기억할 만한 것들을 잘 보관해 두는 일.

    결국에 우리는 행복하려고 살지. 남을 돕는 일도, 나를 돕는 일도. 모두 행복하려고 하지.
    그래서,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누가 안 그렇겠냐만은.

    수업에서 만난 사람들이 오고 가는 일에 제법 익숙해졌다. 한 친구가 또 새 직장을 찾아 간다고 했다. 나는 어떨까, 언젠가 떠나게 될까. 대전이 정말로 내 집이 될까. 새학기에는 시작하는 것도 많고, 무엇인가 일이 없어도 분주한 일들이 많다. 그 김에 생각해 보는 것이다. 나도 떠날 때가 오려나. 언젠가 당연한 듯 멀리 이사하게 될 날도 오려나.

    내일 잘 제출해야 하겠다. 된다면 적어도 삼 년. 되어도 정말 어려울 길일 것이다.
    인생에서 중요한 일들을 더욱 알고 나면, 결국 무엇이 되고, 되지 않고, 그런 것은 굳이 중요하다 할 일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게 된다. 그러니까, 두려울 것이 없어. 가진 것 보다 더 많이 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어.

    기회를 놓치지 맙시다. 행복할 기회. 무엇보다 행복해야 하고, 행복하려면 무엇도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어요. 양파라도 더 예쁘게 썰어보고, 시도 조금 더 외워 보고, 자꾸 코에서 나는 시큰한 느낌이 가져오는 기억들이 대체 어디서 왔는지도 고민해 보고. 나는 당신이 좋습니다, 당신은 나의 친구입니다. 그리 열심히 꼬리도 내려보고, 배도 뒤집어 까보고. 길지 않은 시간에 열심히 해야 할 일이 따로 있기에, 앞으로 남았을 날들이 굳이 두렵지 않습니다.

  • 친구들이 제법 오기에 요리를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따뜻한 것 대접하면 좋을 것 같은데. 양송이 스프도 되고, 집에서 한 만두, 올리비에 샐러드. 부족할 때에는 베이컨 파스타, 토마토 파스타. 크림 파스타. 전도 한 가득. 사과와 오렌지도, 쿠키도 있다.

    분주한 한 주 될 것 같다. 금요일까지 마무리 해야 할 것도, 조금 더 시간이 주어진 실험도 있다. 잘 보내야 하겠다.

    이번 해에는 공연을 자주 보러 가면 좋겠어. 봄이 오려니 자꾸 그런 생각 든다.

    감기도 다 나았는데, 왜 자꾸 생각이 둥둥 뜨지. 낮에는 한참 피곤하다. 정체되어가는 기분도 드는데. 역시 감기든 무엇이든, 한 번 앓고 나면 여파가 큰 것 같다. 그런 탓으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새 봄. 무엇이든 잘 이겨내고. 적절히 잘 넘겨내고, 그리 해야 더욱 잘 날 수 있을 것 같다.

  • 이사 온 뒤 처음 제대로 맞는 주말인 것 같다. 오랜만에 사람들과 일찍 일어나 모였다. 서점에는 가지 못했다. 감기는 다 떨어진 것 같다.

    친구들이 병원에 가라고 재촉한다. 못 내 고마운 일이다. 말이라도 고마운 일이다.

    열을 한참 앓고 나니 다 내린 뒤에도 꿈을 꾸듯 생각이 둥둥 뜬다.

    내일은 일찍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정리하는 것이 좋겠다. 점심은 쓸 데 없이 모아둔 상품권을 써도 좋겠네. 점심이 되면 날이 또 제법 따뜻하겠지. 순풍 순풍 바람이 불겠지. 저녁에 본 사람들은 하나같이 바람이 찬지 따신지 대체 알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겨울이라 하는 사람들과 봄이라 하는 사람들의 차림새가 멋대로. 지 멋대로네.

    몇 달 간 무엇이든 잘 정리되는 운세라고 한다. 두루뭉술하다.

    계절이 잘 정리될 수도 있는 일이지. 당연한 듯이.

    봄 기운과 같이. 감기 기운과 같이. 사람과 같이.
    운세는 늘 그리 두루뭉술하다.

  • 몸이 좋지 않다. 설 연휴에 찾아온 감기가 낫지 않는다. 약 때문인지, 열 때문인지. 몽롱한 날이다. 나사 하나 빠진 느낌이 든다.

    내일은 몸이 괜찮아지면 좋겠다. 할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다.

    낮이 꽤 따뜻하다. 환절기에 감기나 심하게 앓는 꼴을 하면서 설레기는 또 설렌다. 별 일 없어도 굳이 설렌다.
    주말에 갈만한 카페를 찾아두면 좋겠다. 일도 하고, 글 쓰는 것도 하고, 커피를 천천히 맛보는 것도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하고.

    구운 고구마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코가 제대로 마비된 것 같다. 뜬금없이 싹을 틔워볼 생각으로 조금 잘라 두었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싹을 한껏 틔우고 뿌리를 내리면 뭘 하니, 우리 집은 옮겨 심을 흙이 없다, 둘 곳이 없다.

    이내 썩어 곰팡이가 슬 것이다. 그만두기로 한다.

    어른 비슷한 것이 되면서 내다 보는 일에 익숙해진다. 많이도 적었던 일이었다.

    사람 마음도 썩어. 자주 썩는데. 썩는다고 죽지는 않지. 금세 나아.
    그러니까, 고구마 심는 것 그만둔다 하여서, 마음마저 포기하지는 말도록 하자.

    평화로운 겨울 밤이다. 곧 봄이 될 겨울 밤이다.

  • 낮의 기운이 제법 봄과 닮았다. 시간이 조금 더 가면 나긋히 만끽할 시간들이 있을 것이다.

    지나가는 해와 달과 날. 모두가 아쉽다. 하루 하루가 아쉽다.

    때때로 잔인한 세상에도, 사람들 있을 것이다. 사람들 살 것이다.
    함께 시간을 나는 사람들. 많지는 않을 일이다. 정말로 몇, 그 중의 하나. 그 정도 있을 것 같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의 당신에게, 언제 어디에서 올지, 오기는 할지 만나기는 할 지 알 수 없는 당신에게도. 홀씨가 봄 바람에 실려 날리듯 수신인 없는 소식을 날려보고.

    작년과 닮은 듯 닮지 않은 듯. 또 하나의 해가 제대로 시작하는 기운을 맞이하는 때. 요즘은 그런 때.

  • 올해도 전, 갈비찜을 얻어 왔다. 친구랑 했던 말을 들은 것 처럼 고기만두를 많이 해 두셨다. 처음 보는 일이었다.

    동두천에 오랜만에 모두 모였다. 오랜만에 둘째 큰아버지에게 갔다. 먼저 간 이를 찾는 것은 남아 있는 자들을 위해. 늘 그렇게 생각한다.

    들은 이야기, 옛날 이야기. 너무 많다. 생각해 보면 항상 그런 모습. 언제나 흥겹다. 한 마디를 지는 법이 없다.

    유명하다는 삼거리 부대찌개 집에 갔다.

    파주의 민통선 안에는 삼촌의 오랜 친구가 산다. 덕에 구경한 것들이 많았다. 발 들이지 않는 곳은 모두 지뢰밭. 새들이 태어나서 보지 못한 수 만큼 무리 지어 다녔다. 허준의 묘도 다녀왔다.

    친구와는 어릴 적 함께 이상을 꿈꾸었다 했다. 삼촌은 해에 며칠은 아직도 친구를 찾아 일을 돕는다고 한다. 왜인지 세월이 한껏 지나간 아저씨 얼굴에 이십 대의 어린 모습이 보였다. 삼촌이 말했던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삼촌과 친구들의 이상. 많이 알지는 못해도, 몇 마디 하는 말과 표정, 모습으로부터 알 수 있는 그 간의 세월. 아마도 알 수 있다. 삼촌은 친구가 늘 한결같은 모습이라 했고, 삼촌 말의 의미를 단 번에 알 수 있었다.

    시간은 무섭게 흐른다.

    아마도 해가 더 가다 보면 마지막이라 부를 지 모를 모임도 있을 것이다.
    잘 적어두고, 증언해야 할 이에게 증언할 일 정도가 있다.

    더욱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

  • 나는 어느 계절이 그립지 않은 사람이 되고 싶어
    그런 작은 바람에 웃을 수 있는 가을이 될 수 있어

    난 또 이렇게 저 아름다운 하늘을 두고

    그대야
    가로등 하나 없는 낙엽 진 길을 걸어도

    그대야
    이 세상에 두려운게 없어

    굳이 있다면
    나는

    그대가 날 떠나면
    정말 안될 것 같은

    이 시월에

    615 – 10월에

  • 돌아가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 까닭에 대전을 떠나는 시간이 꽤나 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여유는 찾아 가져야 하는 일인 것 같다. 무엇이 안 그럴까.

    전 찌개 끓여보니까 맛이 좋아요. 지난 추석때는 정말 잘 끓였어요.

    올해도 잘 끓여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