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참 희한했다. 박사님께 한 마디 들었다. 지난주에 마쳐야 했던 논문을 너무 대충 해둔 이유였다.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셨다. 잘 모르겠다, 일이 있나? 일이라고 해야 하나. 마음이 힘이 듭니다. 요즘 정말 힘이 듭니다. 무엇이든 제 딴에는 노력한다고 했는데요, 정말 마음을 다 한 것 같은데요. 되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없지는 않았지요, 그럼에도 제가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들도 있거든요. 그 탓에 요즘은 모든 것을 다 미루어 두는 것 같은 기분도 드는 거지요.

그렇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어 그저 요즘 좀 피곤하다고 둘러대었다. 피곤한 것은 사실이지. 나는 이제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니까. 피곤하면 쉬는 것도 일의 일부가 되어버린 일이다.

정말 혼란스럽다. 모든 것에 힘에 부친다. 따지고 보면 그럴듯한 이유도 없을 마음을 모두 털어놓을 이도, 들어줄 이도 지금은 없는 것 같다. 주위 사람들이 모두 여유가 없다. 친구와도 제법 서먹해지는 기분이 든다. 분명히, 지금보다는 조금 더 친했던 것 같다. 분명히 그랬다. 연락이 자꾸 끊기고, 말이 오지 않는 일이 잦았다. 그것도 분명히 그랬다. 그렇게 반복되는 일이었다. 눈치라고 하지. 그렇게 말 한 적 있다. 분명히 눈치를 잘 채고 그만두면 되는 일인데. 그런 일인 것도 잘 아는데.

한 마디를 듣고는 정신을 퍼뜩 차렸다. 결국 논문은 그럭저럭 잘 마무리 되어 가는 것 같다. 그림도 제법 마음에 들게 그렸고, 해야 할 일도 잘 정리했다. 빠르게 잘 했다. 몇 가지 자잘하게 남은 것이 있다. 그런 것을 꼼꼼히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것도 잘 안다. 더블 체크하는 것이 먼저 하는 것 보다 더욱 중요한 것 같다.

이천 이십 삼년 겨울이었지. 그때가 시작이었다. 그 신호가 진짜였다면, 정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였을 것이다. 정말 재미있는 영화였을 것이다. 그 덕에 실망은 더욱 컸다. 십 퍼센트 정도의 가능성이라고만 해도, 우리에게는 엄청나게 큰 가능성이었다. 모든 이들의 눈에서, 연구단의 종료 소식 이후에 바닥부터 자라났던 우울이 잠시 걷히고, 한 번도 보지 못했던 그렁그렁한 기대와 열정을 많이 보았다. 희망이란 그런 것이다. 정말 무섭고 소름끼치게도 엄청난, 정말 엄청난 힘을 가진다.

그런 모든 이야기를 담기에 논문은 너무 차갑고, 너무 짧다. 그러니 그 외의 이야기들은, 적어 두고 기억해 두고 잘 간직해야 한다. 대단히 재미있고, 어쩌면 매우 중요할 인생의 순간이었다.

가능성까지 가늠할 물리를 우리는 알지 못해서, 그저 할 수 있는 최선을 했다. 여전히 그 때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교수님이 새벽아, 네 신호가 진짜였으면 정말 멋진 일이었을거야. 그리 말해주었던 일이 깊이 박혔다. 마음에 깊이 박혔다.

그 영화 아직 끝나지 않았을 지 모른다. 거기 있지 않은 것이 맞더라도.

매일 매일의 행동에 고민이 깊다. 내가 지금 쓰는 이 시간이, 오 년 뒤에는 몇 배, 몇 십 배로 돌아올 것이다. 그 때 쯤 되면, 점점 방향은 굳어지고, 유 턴을 할 기회는 점점 적겠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생각을 그만두어야 시간을 더욱 잘 쓸 수 있다. 나는 그래도 사랑과 행복,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생각해. 인생에서는 역시, 어떤 무엇이든 사랑과 행복.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는 잘 될 것이다. 나는 잘 하는 것도 많고, 무엇이 멋진지도 이제 정말 잘 알고. 내가 무엇에 약한지도 잘 안다. 그런 것 모두 알면, 이제 해야 할 일도 잘 알아야 하는 것이다, 많이 배워야 한다. 요리를 다시 시작하니 기분이 여러모로 참 좋다. 뿌듯하고, 맛있고, 재미있고, 값도 싸다. 그저 조금 발품을 팔고, 조금 더 알아보고, 그 정도의 노력만 들이면 되는 일이다. 앞으로 이와 같은 일 많을 것이다.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다.

금요일에는 친구들과 점심 먹었다. 오랜만에 온 친구도 있었다. 언제나 무엇인가 열심히 하는 친구, 그러다 자주 힘든 친구. 자주 안타까웠다. 어쩌면 용기내어 왔을 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더욱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런 마음 잘 전해졌을까. 짬뽕이 너무 매워 먹기를 그만두었다. 그 많은 땀을 다 닦아내며 먹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 앞에서는 그렇다. 오늘은 테니스도 쳤다. 겨울 새벽에 테니스라니. 발전했지, 정말 발전했지. 에너지 많이 늘었지. 그래도 전보다 많이 늘었지. 오 년 전 만 했어봐, 상상이나 했겠어. 더욱 잘 하자. 이제 알았으니, 더욱 에너지를 어디서 얻어 오자. 한 번에 쓸 큰 에너지는 없어도, 버티는 것은 제법 잘 하니까. 나는 그것은 참 잘해. 그러니, 아주 고꾸라질 일만 없도록, 놓지 않도록만 노력해보면 될 것이다.

참 반가웠다. 모두들 참 반가웠다. 언제까지 반가울까. 노력한다고 되는 일일까. 노력을 하기는 하는데요, 쥐어 짜내 하긴 하는데요. 분명히 알아, 지금과 같이 좋은 친구들에게 그저 그런 자세로 대하면, 나중에 분명히 후회할 거야. 지치는 날에도, 힘이 드는 날에도, 언제나 긍정적이고, 웃는 모습으로 반겨야 해. 그것이 노력일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노력일 것이다.

친구와 맥주 한 잔 하고 싶다. 전에 언젠가 그랬던 것처럼, 별 일 없이 걷고 걸으며 그랬던 것처럼. 그저 그러고 싶다. 언제 그럴 기회가 또 있을 지 모르겠다. 기회가 영영 없을 일도 충분히 있을 일이다. 괜찮아. 나는 정말 괜찮아. 어떤 결론이 되었던 정말 괜찮아. 그저 제법 혼란스러운 이 시기를 잘 벗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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